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왜곡/TV조선 (문단 편집) === 36곳의 무기고가 시민군에 의해 4시간 만에 탈취된 것은 간첩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 (12분 55초) [[파일:attachment/5.18 역사왜곡/TV조선/사진15.jpg]] >장성민 : 자, 임천용 대표님. 지금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의혹들을 가지고는 있지만은, 어떠한 사실, 어떤 발언, 어떠한 확인에 의해서 지금 그렇게 하시는 거죠. >임천용 : 자, 그럼, 이제 아까, 우리 저, 이주천 교수님, 그 저, 질문 사항에 한 마디 좀, 들여다 볼 게 있는데, 그, 무기고를, 4시간 동안에, 3, 48군덴가? 38갠가? 에, 36곳을 털었어요? 근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전부 이제 작전을 배운 사람이고, 특수부대에 전부 몸 담았던 사람인데, 시민군이 민주화 시위를 하기, 저, 위해서 길에 나온 시민군이, 그 무기고 다수의 무기고, 전라도 전체에 퍼진 데 있는 도로를 4시간 안에 동시다발적으로 털었다? 그러면 이건 어떤 계획이 밑에 깔려있단 소리죠, 배후에. 그 다음에 그 전에, 아시아나 자동차 털었죠. 거기서 트럭 수백대, 장갑차 몇 대 털어, 털어 가지고 나왔죠. 그래 가지고 그 트럭 가지고, 전국각지에 있는 이 저, 이 뭐야, 뭐 무기 저, 창고를 털어가지고, 4시간 안에 동사다발적으로 털어서 광주에 들어왔다 말이죠. …… 아래는 1995년 완료된 5·18사건 의문점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 중 시민군의 무기고 탈취와 관련한 부분이다.[* 연합뉴스. 1995.「5.18사건 의문점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02648|#]] (2013. 05. 17)] 광주에서 시위대에 의한 무기탈취는 19일 오후 3시 15분께 시위대가 기독교방송국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31사단 경계병력으로부터 M16소총 1정을 탈취한 것이 처음으로 이 소총은 곧 회수됐으며 그후 20일 밤 11시께 광주세무서 방화, 점거시 지하실 무기고에서 칼빈 17정을 탈취했고 21일 오후 1시께 광산 하남파출소에서 칼빈 9정이 탈취됐으나 시위대가 본격적으로 무기탈취에 나선 것은 21일 오후 1시께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의 발포가 있은 후로 시위대는 광주 인근지역으로 진출, 화순, 나주 등 지방의 지.파출소와 화순광업소, 한국화약 등 방위산업체 등에서 대량의 무기와 실탄을 탈취했음." 즉 당시 광주 시민들은 경찰서, 파출소의 예비군 무기고, 또는 근처 방위 상업체에서 무기를 탈취했다는 것이다. 특히, 90년대 초 예비군 무기를 군부대로 이관하는 사업이 추진될 때까지 향방 무기는 경찰서와 파출소의 예비군무기고에서, 직장 무기는 직장 예비군무기고에 보관되고 있었다.[* 연합뉴스. 2000.「`예비군 무기고' 철거놓고 경찰-군 갈등」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013822|#]] (2013. 05. 17)] 이 파출소들과 방위 상업체가 시민들이 찾기 쉬운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군사적 기밀 장소"라는 수사를 이용해서 포장하려는 것은 시민군을 어떻게든 불순세력과 연관하려고 하는 비열한 의도이다. 21일 하루 안에 무기고가 탈취당했다는 주장도 틀렸다. 전교사 작전일지의 5월 22일자 기록에는, 목포 연동지서무기고 및 목포경찰서 무기고 피복창고가 탈취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말 편집부, <광주진압계엄군의 작전일지>, 『말』, 1988년 8월, 26쪽. 스캔본 : [[http://blog.naver.com/chiyahn/2018731616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